들어가면서...
이 년 전쯤 『금요일 밤의 뜨개질 클럽』이라는 미국 소설을 회원님들과 나눠 읽으며 맨해튼의 낡은 건물 2층에 있는 '워커 모녀 수예점'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상상했습니다. 매주 금요일 밤, 수예점을 찾는 그녀들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어제 만난 사람이 십년지기인 듯 돈독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의구심을 품지 않는 이유는 뜨개쟁이라는 동질성을 느끼며 스펀지 같은 흡인력으로 서로에게 빠진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사막을 지나 강을 건너 평화로운 땅에서 동족을 만난 기쁨으로, 이곳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털어놓고 특별한 주제랄 것도 없는 수다를 섞어 한 코 한 단을 올라가면서 부피를 가늠할 수 없는 정과 신뢰와 우정을 쌓아갑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반짝이며 실을 골라, 방금 태어난 새끼 강아지의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듯이 포장을 뜯기에도 아까운 실타래를 풀어 첫 코를 뜨고, 그러다 모양이 나오지 않으면 머리를 움켜쥐었다가 다시 풀어뜨기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마무리 단계에 다다르면 기대와 함께 혹시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찾아오지만, 완성된 작품을 입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거울 앞에 서서 만족감에 입술을 길게 늘여 웃게 되면서, 비로소 그 동안의 힘든 과정은 희열이 됩니다.
뜨개질하는 사람들의 감성은 잔물결처럼 여리고 섬세합니다. 드라마나 CF에 비춰지는 뜨개질하는 여자의 모습이 여느 여인보다 아름다워 보이는 건 손과 눈에 소녀의 감수성과 정서가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실, 바늘과 교감하는 사랑스런 여인은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세 번째 손뜨개 책을 내놓습니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수고로움으로 인해 한순간 후회하기도 했지만, 책의 내용을 기획하고 머리를 맞대어 작품을 구상하며 종이와 잉크 향이 폴폴 나는 서점의 한 코너에 서서 이 책을 손에 들고 한 장 한 장 넘겨 보아 줄 아름다운 독자를 생각하며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에 참여한 친애하는 제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작품은 출품했으나 선택되지 못한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마지막으로 작품 제작에 필요한 실을 제공해 주신 '하나상사' 사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서경숙(seraknit@hanmail.net)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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